
작성일 : 2025-12-24 12:32


시설 개선 대신 운영규정 개정…“피해 저감 기능 상실” 정부 첫 공식 판단
유가족협의회 “국가 책임 공식 확인…정부 사죄해야”
179명의 목숨을 앗아간 12·29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와 관련해, 공항 활주로 끝에 설치된 방위각제공시설(Localizer)이 항공안전 기준을 위반한 부당한 시설이라는 정부의 첫 공식 판단이 나왔다.

국민권익위원회는 12월 22일 의결을 통해 “무안국제공항 방위각제공시설은 활주로 종단안전구역에 포함되는 항행안전시설임에도 불구하고, 관련 기준이 요구하는 ‘부러지기 쉬운 구조(Frangible)’로 설치되지 않았다”며 국토교통부에 시정 권고를 내렸다.
권익위는 해당 시설을 포함해 활주로 종단안전구역을 재설정하고, 콘크리트 둔덕 위에 설치된 방위각제공시설을 기준에 맞게 다시 설치할 것을 권고했다.

권익위는 무안국제공항 활주로가 CAT-Ⅰ 정밀접근활주로에 해당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관련 기준에 따르면 정밀접근활주로의 경우 방위각제공시설이 설치된 지점까지를 활주로 종단안전구역으로 설정해야 하며, 이 구역 내에 설치되는 항행안전시설은 항공기 충돌 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반드시 부러지기 쉬운 재질로 설치해야 한다.
그러나 조사 결과, 문제의 방위각제공시설은 콘크리트 격벽과 상판을 포함한 둔덕 위에 설치돼 있었고, 착륙대 종단으로부터 약 204m 지점에 위치해 있음에도 종단안전구역에서 제외돼 운영돼 온 것으로 확인됐다.
권익위는 이를 두고 해당 시설이 “항공기 과주 또는 활주로 이탈 시 가장 먼저 충돌할 수 있는 1차 위험물”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본보가 확인한 권익위 의결서에 따르면, 무안국제공항은 2007년 개항 당시 방위각제공시설이 위치한 지점(착륙대 종단으로부터 약 204m)까지를 활주로 종단안전구역으로 설정해 관리해 왔다.
그러나 2013년 11월 부산지방항공청의 공항운영증명 정기검사 과정에서 “종단안전구역 내에 방위각제공시설이 포함돼 있어 부적정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현행 기준상 종단안전구역 내에는 항공기 충돌 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부러지기 쉬운 구조의 시설만 설치할 수 있다.
이후 한국공항공사는 2014년 10월 28일 공항운영규정을 개정해 활주로 종단안전구역의 길이를 기존 204m에서 199m로 5m 축소했다. 그 결과 방위각제공시설은 안전구역 관리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에 대해 권익위는 “방위각제공시설은 구조적·기능적으로 활주로 종단안전구역과 불가분하게 결합된 시설”이라며 “하위 규정인 공항운영규정 개정만으로 상위 법령인 설치기준의 강행적 효력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시설 위치에 맞춰 안전구역을 설정해야 할 기준이, 운영규정 변경을 통해 서류상 조정된 셈이라는 지적이다.

권익위는 방위각제공시설의 구조적 위험성도 명확히 지적했다. 의결서에 따르면 해당 시설은 단순 안테나가 아니라, 높이 약 2m 내외의 콘크리트 격벽 19개가 일정 간격으로 설치되고 그 위에 길이 42m, 폭 4.2m, 높이 0.7m의 콘크리트 상판이 결합된 둔덕형 구조물이다.
권익위는 “항공기 충돌 시 부러지거나 휘어지며 충격을 분산해야 할 항행안전시설이 오히려 충돌 에너지를 흡수·완충하지 못하고 증폭시키는 강성 구조물로 작용했다”며 “이는 활주로 종단안전구역의 본래 기능을 상실하게 만든 구조”라고 판단했다.
특히 해당 시설은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진행된 항행안전시설 개량사업 과정에서도 콘크리트 구조가 유지·보강된 것으로 확인됐다. 권익위는 이 같은 구조가 항공기 이탈 시 피해를 줄이기보다 위험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지적했다.
의결서에는 개항 이전부터 해당 시설이 위험 요소로 인식돼 왔다는 정황도 담겼다. 한국공항공사는 2005년과 2007년 개항 전 현장 조사에서 “활주로 종단 300m 이내에 콘크리트 둔덕이 존재해 기준에 부적합하다”며 보완을 요구한 사실이 확인됐다.
그럼에도 해당 문제는 해소되지 않은 채 공항이 개항했고, 이후에도 콘크리트 구조는 유지됐다. 권익위는 이러한 경과를 종합해 “해당 시설은 관련 기준을 명백히 위반한 상태로 설치·관리돼 왔다”고 결론 내렸다.
권익위는 이번 판단이 항공사고의 단일 원인을 확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전제하면서도, 문제의 방위각제공시설이 항공기 과주 또는 활주로 이탈 시 가장 먼저 충돌할 수 있는 위험물로 작용해 피해 저감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는 참사 피해를 키운 중대한 구조적 요인 중 하나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협의회는 “국가의 잘못을 정부 기관이 처음으로 공식 확인한 결정”이라며 정부의 책임 있는 대응을 촉구했다. 유가족협의회는 입장문을 통해 “정부와 국토교통부는 권익위 결정을 겸허히 수용하고, 기준 위반 시설의 설치·관리 책임을 통감해 국민 앞에 공식적으로 사죄해야 한다”며 “이번 결정을 계기로 항공안전 관리체계 전반을 근본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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