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26-05-18 13:34

무안군, 전남 5·18 사적지 무안-1호서 제46주년 추모식 개최
무안읍 주민들 주먹밥 나누며 시위대 위로…지역 공동체 연대 재조명
박일상 씨 회고 “피탈된 무기, 광주행 막고 현경 전경대대로 돌려보내”

[무안군민신문=박조헌 기자] 무안군은 제46주년 5·18민주화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 18일 오전 9시 전라남도 5·18 사적지 무안-1호인 무안버스터미널에서 추모식을 개최했다.
이번 추모식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희생한 5·18 민주유공자의 뜻을 기리고, 민주·인권·평화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마련됐다. 행사에는 김병중 무안군수 권한대행을 비롯해 무안군의회, 5·18 관련 단체, 유관기관·사회단체 관계자 등이 참석했으며, 헌화와 분향, 묵념 순으로 진행됐다.
무안버스터미널은 1980년 5월 무안지역 민주화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상징적 장소다. 당시 광주에서 출발한 차량 시위대 일부는 나주와 함평 방면을 거쳐 무안읍에 도착했고, 광주에서 벌어진 계엄군의 강경 진압 상황을 알리며 군민들에게 항쟁 동참을 호소한 것으로 전해진다.

소식은 순식간에 퍼졌다. 무안버스터미널 광장에는 수백 명의 군민이 모여들었고, 중장년층은 물론 학생들까지 거리로 나와 신군부와 계엄군의 폭력적 진압을 규탄했다. 광주에서 내려온 일부 시위대는 무안·해제·망운 일대 지서의 무기고를 찾았고, 또 다른 시위대는 목포 진입을 시도했다. 무안읍에 머문 시민군과 시위대는 광주 진입 기회를 기다리며 항쟁 의지를 다졌다.
특히 당시 무안지역 주민들의 역할도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박일상 씨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무안버스터미널 인근 후청동 부녀회원들을 주축으로해서 무안읍 주민들은 시위대와 시민들을 위해 주먹밥을 만들어 나눴다. 박일상 씨는 “후청동 어머니들과 할머니들이 나와 주먹밥을 만들고, 고생하는 시위대들을 위로했다”고 회고했다.
또 박일상 씨는 당시 무안파출소 무기고가 시위대로부터 피탈된 이후, 자신과 김학주 씨 등이 시위대를 끝까지 설득해 해당 무기가 광주로 향하지 않도록 하고, 현경에 소재했던 전경대대로 돌려보내는 데 역할을 했다고 회상했다. 박 씨는 “무기가 광주로 가면 살상 피해가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며 “시위대를 설득해 무기 반출을 막았다”는 취지로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 같은 회고는 무안지역 항쟁이 단순히 광주 시위대의 이동 경로에 그친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항쟁의 뜻에 함께하면서도 추가 유혈 충돌과 주민 피해를 막기 위해 현장에서 판단하고 행동했던 공간이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시위대와 시민군은 계엄군과 구분되는 항쟁 참여 주체이며, 계엄군은 비상계엄 아래 투입된 국가 군 병력을 의미한다.
당시 무안의 역할은 단순한 ‘통로’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무안은 광주가 고립되지 않도록 목포와 함평, 영암 등 서남권 지역을 연결하며 항쟁의 흐름을 이어준 연대의 공간이었다. 5·18이 광주만의 항쟁이 아니라 전남 전체가 함께한 민주주의 운동이었다는 점에서, 무안의 5월 정신은 더욱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한편, 김병중 무안군수 권한대행은 5.18 민주항쟁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는 46년 전 민주 영령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앞으로도 5·18 정신을 깊이 새기고 그 가치를 이어갈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지역사회에서는 무안의 5월 정신을 단순한 과거의 기억에 머물게 할 것이 아니라, 연대와 나눔, 공동체 정신을 지역 미래발전의 가치로 계승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980년 항쟁의 길목이었던 무안은 이제 민주주의의 기억을 품은 서남권의 중심 공간으로 다시 조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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