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26-07-13 12:48
사적 지정 ‘청신호’...성내에서 다량의 철기 유물이 출토
군사·의례 복합 거점 입증, 후백제 천년 역사 베일 벗어

무안 봉대산성이 1,000년 전 후백제의 숨결을 품고 마침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국가사적 지정을 목표로 진행된 정밀 발굴조사에서 성벽의 구조는 물론, 당시의 군사·종교적 생활상을 보여주는 결정적 유구와 유물들이 대거 확인되면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무안군은 국가유산청의 역사문화권 중요유적으로 추진 중인 무안 봉대산성 정밀 발굴조사에서 산성의 구조와 기능을 증명하는 주요 성과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해제면에 위치한 봉대산성은 서해안 연안 항로와 영산강 수계를 동시에 조망하는 통일신라시대 석축산성으로, 고대 염해현과 조선시대 임치진의 배후 산성이다. 특히 후백제와 고려가 서남해 해상 주도권을 두고 격돌한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해 후백제 역사문화권의 해양축을 규명할 핵심 유적으로 평가받아 왔다.
이번 발굴조사의 가장 큰 성과는 봉대산성 북문지의 구조를 처음으로 규명한 점이다. 조사 결과 성벽을 파내어 문을 만든 ‘현문식’ 구조의 북문지가 확인돼 산성의 출입 및 방어체계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자료를 확보했다. 성벽 몸체(체성부)에서는 돌을 지그재그로 견고하게 맞물려 쌓는 ‘품(品)자형’ 축조기법과 함께 암거식 배수시설, 기와를 쌓은 와적시설이 동시에 확인됐다. 이는 성벽 축조 초기 단계부터 체계적인 배수 시스템을 계획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향후 산성의 공간구조 복원과 국가유산 지정을 위한 핵심 학술자료가 될 전망이다.
산성 내부가 단순한 방어시설을 넘어 군사·의례 기능이 결합된 복합 공간이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네모 반듯한 방형 석축 저장시설과 내부 계단시설 주변에서 무언가를 묻고 복을 빌었던 흔적인 ‘매납 의례용 구덩이(수혈)’와 글자가 새겨진 ‘명문 기와’가 함께 출토됐다.
또한 성내에서는 철재 재료와 함께 다량의 철기 유물이 출토돼 철제 무기의 자체 생산 및 보수·정비가 이뤄진 군수 기지였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외에도 산성의 주 출입구로 추정되는 남문지와 군사들의 식수를 책임졌을 방형 집수시설의 흔적이 조사구역 경계부에서 포착되어 대규모 계획 성곽이었음이 입증됐다.
무안군은 이번 조사를 바탕으로 미조사 구간에 대한 연속 발굴을 추진하고 성벽 보존, 역사문화경관 회복, 탐방환경 개선 등을 단계적으로 진행해 국가유산 지정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나아가 인근 임치진성과 봉수유적을 연계한 권역별 종합조사를 확대해 후백제 역사문화권 해양축을 대표하는 선도사업으로 육성할 방침이다.
김산 무안군수는 “이번 발굴조사는 봉대산성의 천년 역사가 베일을 벗는 역사적인 순간”이라며 “지속적인 조사와 체계적인 보존·정비를 통해 봉대산성을 후백제 해양 역사문화를 대표하는 핵심 유적으로 육성하고 역사문화권 정비사업을 강력히 추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