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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과 비리는 무관심속에서 자라난다

작성일 : 2022-04-22 16:08 작성자 : 강성정 편집국장

 

혁명의 어원은 주역이다. 천지혁이사시성, 탕무 혁명 순호천이응소인 (天地革而四時成, 湯武 革命 順乎天而應乎人) 하늘과 땅이 바뀌어 네 철을 이루듯 탕, 무의 혁명은 하늘의 뜻을 따라 사람들의 요청에 응한 것이다. 정치학에서 혁명은 권력의 급작스러운 교체를 뜻한다. 민중의 참여로 권력의 근간 자체를 바꾼다는 점에서 무력에 의해 이뤄지는 쿠데타와는 구별된다. 혁명에는 다수의 피가 희생된다. 죽음과 맞바꿀만한 가치가 있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혁명은 실패하기도 하고 성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패한 혁명이라도 결국 민중의 의지는 관철되는 경우가 많다. 많은 시간이 걸려도 뜻을 굽히지 않아서다.

1905년 빈곤에 처한 러시아 노동자들은 군주제를 반대하는 시위를 했다. 그 유명한 ‘피의 일요일’이라는 대학살로 이어지며 실패했다. 1917년 2월, 러시아 노동자들은 다시 거리로 나왔고 결국 로마노프 왕조와 제국체제를 종식시켰다.

중국혁명은 1911년 10월 청나라에 대한 무장 반란군들이 일으켰다. 그리하여 수세기 동안 내려온 제국 체제와 청 왕조의 통치가 막을 내렸다. 1912년 중국은 처음으로 공화국이 수립됐다. 물론 이 혁명에는 후에 일반 시민들의 합세가 성공의 도화선이 되었다. 아이티 혁명은 북미 노예해방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세계인권에도 큰 획을 그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발견한 아이티는 스페인에서 프랑스로 지배권이 넘어갔는데 섬 주민들이 금 채굴과 유렵의 질병에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다. 이에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끌려와 이들을 대신해 열악한 노동을 했다. 1791년 8월 22일 아이티 원주민들은 불같이 봉기했다. 결국 그 이듬해에 프랑스는 생 도밍고의 유색인종에게 권리를 부여했다.

18세기 프랑스는 봉건제도하에서 개인의 지위와 권리가 그 사람이 가진 유산에 의해 독점적으로 결정됐다. 당신 아무런 권력도 없는 농민은 사회의 96%를 차지했다. 1789년 7월 군주제에 좌절한 농민들은 바스티유습격을 시작으로 프랑스혁명을 일으켰다. 루이 16세는 단두대에서 처형됐다. 영국과 아메리카 식민지 사이의 긴장은 인지세법이 도입되면서 시작됐다. 인지세법은 프랑스와의 7년 전쟁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부과되는 세금이었다. 급기야 전쟁으로까지 치달아 미국은 본격적인 독립투쟁을 하게됐다. 1776년 미국은 독립선언문을 공식으로 채택하는 미국혁명을 완수했다.

1960년 4월19일. 자유당 정권이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개표를 조작하자 이에 반발하여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들고 일어났다. 4.19혁명은 나중에 5.16군사정변을 초래했지만 그 역사적 의의는 상당하다. 4.19혁명세력이 추구하는 민주이념과 사회정의 실현은 지금도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분위기는 많이 달라진 듯하다. 혁명세대들과는 달리 요즘 세대들은 사회와 정치에 대해 관심이 거의 없다. 관심이 없으니 판단력도 흐려진다. 이런 무관심은 부정 부패를 키운다. 선배들이 일궈낸 민주사회와 사회정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4.19혁명 희생자들에 대한 묵념이 일순간이라도 필요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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