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몽탄면, 관광지로서의 면모 갖추기 위해 분주 주민들도 합세해 예전의 명성 되찾을 날 머지않아
작성일 : 2022-05-06 13:56
느러지는 영산강 가에 늘어져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자연스럽게 마을 이름도 느러지다. 무안은 리아스식 해안으로 유명하다. 이 곳을 관통하는 영산강도 굽이친다. 오죽하면 곡강이라 할까. 바로 느러지가 새 을(乙)자의 굴곡 형상을 한 곳이다. 장구부로도 불린다. 조리봉에서 뻗어 내려온 줄기가 둥근 활처럼 휘어진 곳이다. 예로부터 느러지 마을 곳곳에는 명당이 많다는 소문이 무성해 지금도 묘지가 군데군데 자리잡고 있다.
느러지마을의 행정 지번은 몽탄면 이산리 32-20번지다. 행정이름도 어오지다. 그런데도 마을 사람들은 느러지로 불리기를 좋아한다고 한다. 그 이름속에는 어딘지 모를 정감이 흐르는 것 같긴 하다.
특이한 것은 이 마을이 마치 한반도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한반도 모양새를 이루는 지형은 강원도 영월군 한반도면과 몽탄면 이산리 두 곳뿐이다. 느러지 마을은 영월보다 강폭이 600m 이상 더 넓다. 훨씬 보기 시원하다는 말이다.
영산강에는 아름다운 8경이 있다. 2010년 국토해양부가 4대강 사업과 연계해 새로 정한 것이다. 목포 영산호, 무안 느러지, 나주 황포돛배, 죽산보, 나주평야, 승촌보, 광주 풍영정, 담양 대나무 숲, 담양습지가 선정됐다. 느러지가 바로 2경에 꼽혔다. 몽탄면에서 이산리 방향으로 2km 정도 가면 식영정이 있다. 이 정자는 1630년에 한호 임연선생이 지었다. 복거록에 따르면 임연선생이 정자를 짓고 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 정자는 당대 내로라하는 석학들의 토론장이자 시 경연장이었다. 이 후 임연 선생의 증손으로 동사회강을 지은 문인 학자 노촌 임상덕선생이 강호제현과 교류하는 등 무안 몽탄 이산리의 나주 임씨 강학교류 공간으로 유명했다. 조선시대 때에는 마을입구까지 물이 들어왔다고 한다. 상류에서 내려온 강물이 이곳에서 돌아서 흘러 물의 기운이 가득한 수태극의 자리로 지목된다. 그래서 명당이 많은 곳으로 위세를 떨쳤나보다. 식영정에서 본 곡강은 가히 절경이다고 입을 모은다.
느러지마을에는 표해록을 지은 금남 최부 선생의 묘와 사당이 있다. 표해록은 중국 견문록이다. 조선 성종 19년 1488년에 썼던 수기다. 제주 추쇄경차관으로 있던 최부 선생은 부친이 별세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집으로 돌아오던 중 풍랑을 만나 중국에 표류돼 온갖 고난을 겪고 반 년만에 귀국하기까지의 과정을 왕명에 따라 기록한 책이다. 조선시대에 북경 남쪽을 가 본 사람은 주로 표류한 사람들이었는데 문자를 모르는 어부들이 대부분이어서 글로 남기지 못했다. 조선시대의 사신들은 정해진 길로만 다녔기 때문에 북경 남쪽으로는 내려갈 수가 없었다. 자연스레 사신 가운데 중국에 다녀온 기록을 남기긴 했으나 한계가 있었다. 성종은 이에 최부선생에게 표류기를 쓰라고 명을 내린 것이다. 최부 선생의 표해록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와 함께 세계 3대 중국 기행문으로 손꼽힌다.
성종이 공을 치하하면서 소원을 물으니 최부 선생은 “저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임종도 치르지 못한 선친을 편하게 모시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성종은 지관을 보내어 느러지 명당터를 찾아 최부 선진의 묘를 이곳으로 옮겨 쓰게했다. 최부선생도 해남에서 느러지로 옮긴 것도 이 무렵이었다.
느러지는 2009년에 황폐화되기 시작했다. 4대강 사업에서 나온 준설토가 느러지 하천 부지에 쏟아부어졌다. 잡풀과 잡목, 억새풀이 무성해도 손질은 없었다. 절경이 무관심과 방치로 버려질 찰나에 닥쳤다.
몽탄면이 결국 발벗고 나섰다. 영산강 8경 코스를 라이더들이 즐겨 찾는다는 점을 알고 먼저 1.7km 길이의 자전거 도로를 만들었다. 느러지에 꽃씨도 파종했다. 밭갈이와 함께.
최근에는 이산리 느러지 입구와 당호~명산 간 도로에 유채꽃밭도 조성됐다. 몽탄면 새마을협의회(회장 임관택, 임순희) 회원 70여명도 면의 개발 행보에 힘을 보탰다. 유채꽃밭에서 돌고르기와 나무 가지치기등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주민들의 관광객 유치를 위한 봉사활동은 몽탄 면에게 큰 힘이 된 것은 불문가지다. 봄에는 유채꽃, 여름에는 꽃양귀비, 가을에는 코스모스가 만개하는 파노라마 뷰를 가지게 될 때까지 면과 주민은 일체가 되었다.
이들은 머지않아 느러지마을이 무안군의 손꼽히는 관광명소가 될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이 아름다운 지역이 그동안 흙속의 진주로만 묻혔던 세월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제 모습을 찾아가는 상황이어서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이제 느러지 전망대로 재미를 본 나주시가 부럽지 않을 날도 올 것이다.
강성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