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방선거, 투표로 빚을 갚자
작성일 : 2022-05-13 11:45
제8회 지방선거가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지방자치제는 풀뿌리 민주주의다. 민주주의 정착에 있어 그만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과거 민주화를 염원한 움직임들은 지방자치제를 빼놓지 않고 부르짖었다. 지자제가 없는 민주주의는 반쪽짜리에 불과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넘쳤다. 그런데 정권을 잡은 세력들은 이 제도를 기피했다. 중앙 부처뿐만 아니라 지역의 공무원들까지 좌지우지 하고 싶었을테니까 말이다. 이들이 인사권자에게 꼼짝못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단체장 직선제로는 그 뜻을 이루기 어렵다. 지역민심은 또 어떤가. 과거처럼 막대한 재정지원으로 지역의 분위기를 원하는 대로 조정하기가 어려워진다. 여러모로 지자제는 걸림돌이었다.
이러한 엇갈린 셈법 속에서도 지자제는 결국 시행됐다. 그 과정이 얼마나 아슬아슬했고 속이 타들어 갔는지 반추해보자.
1952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지방선거가 실시됐다. 1956년 제2기 지방선거에서는 기초단체장인 시,읍,면장 선거까지 치러졌다. 그러나 2년 뒤에 기초단체장의 직선제는 폐지됐다. 대통령 입장에서는 역시 말 잘 듣는 지방단체장이 필요했던 것이다.
1960년 4.19이후 민주당 정부가 들어서자 지방의회와 단체장을 직선제로 하는 완전한 민선 지방자치제의 기틀이 마련됐다. 순탄할 것 같았지만 날개를 펴기도 전에 5.16이 터졌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중앙집권화가 필요하다는 논리로 지방의회는 해산됐다. 그리고 영영 사라졌다.
무려 27년뒤에 노태우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지방자치제 부활에 대한 논의가 지펴졌다. 이때도 역시 지방의회에 대한 언급만 있었다. 지방자치단체장 선출은 먼지만 쌓여져갔다. 우여곡절 끝에 90년 12월 31일 151회 정기국회에서 지방의원 선거법,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법안등이 여야만장일치로 통과됐다. 노태우 전대통령은 단체장 직선제가 마음에 안들었던 것일까. 92년 연두 기자회견에서 단체장 선거의 연기를 선언해버렸다. 다시 한 번 국민은 좌절을 맛보았다. 김영삼 전대통령은 이를 간과하지 않았다. 단체장 선거를 공약으로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된 후 마침내 95년 6월 27일 역사적인 4대 지방선거가 실시됐다. 지방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들이 함께 주민에 의해 선출되는 온전한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이다. 대통령제에서는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나라가 어떻게 바뀔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대목이었다.
지자제가 이렇듯 어렵게 성취된 것을 지역주민들은 잘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제도를 최대한 활용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러려면 투표는 반드시 해야할 것이다. 주민의 뜻대로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이 뽑혀야 한다. 기권등 쏟아지는 사표속에 소수의 득표로 당선되는 사례가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철저한 검증을 하고 진짜 일군을 선출하는 주민들의 노력들이어야말로 선배들의 천신만고에 빚을 갚는 것이다.
편집국장 강 성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