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성일 : 2025-07-23 11:07

불량 퇴비와 폐기물 살포의 그림자, 세계자연유산 무안 갯벌이 병들고 있다

전남 무안 일대를 강타한 집중호우 이후, 농경지에서 흘러나온 토사와 정체불명의 악취성 침출수가 농수로를 막고 해양 생태계까지 오염시키고 있다. 그 피해의 중심에는 밭둑 제거와 불량퇴비 살포, 나아가 최근 심각한 논란이 되고 있는 ‘오니 슬러지 기반 퇴비’ 유통 실태가 자리하고 있다.
‘분변토’, ‘지렁이 퇴비’로 둔갑한 폐오니 슬러지
최근 농촌 지역에서는 ‘분변토’ 또는 ‘지렁이 퇴비’라는 이름으로 유통되는 퇴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문제는 이 퇴비들이 대부분 하수처리장, 축산 폐수처리시설, 음식물 쓰레기 처리장 등에서 발생한 ‘오니 슬러지’(하수 찌꺼기)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업체들은 이 슬러지를 '유기성 자원'이라고 포장하면서, 지렁이 분변을 이용해 발효·숙성시켰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지렁이 처리 과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거나, ▲충분한 발효기간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출하되는 사례가 빈번하다. 이로 인해 심한 악취, 병원성 세균 잔존, 중금속 함유 가능성 등 다양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분변토’라는 이름은 마치 자연친화적이고 완숙된 유기질 퇴비처럼 보이게 만들어 농민들이 경계심 없이 받아들이게 만들지만, 실상은 폐기물 성격의 잔류물질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돈 받고 뿌리는 ‘폐기물 처리의 역전 현상’
이러한 슬러지 퇴비는 정상적인 폐기물 처리 비용을 회피하려는 일부 업체들의 수익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정상적인 방법대로 폐오니를 소각하거나 매립하려면 톤당 수십만 원의 처리 비용이 발생하지만, 이를 퇴비로 위장해 농가에 유통할 경우 ▲‘재활용’이라는 명분을 얻을 수 있고 ▲오히려 농가에 일부 금액을 지급하고 살포하게 만드는 구조도 존재한다.
25톤 트럭→포크레인→트랙터… 위장 살포의 실태
현장에서는 불량 퇴비 살포가 교묘한 위장 작업 방식으로 이뤄지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먼저, 25톤 대형 트럭이 불량 슬러지 퇴비를 밭 가장자리에 직접 하역한 후 포크레인이 이를 밭 중앙부까지 2차로 분산 이동시키고, 마지막으로 트랙터(로터리)가 퇴비를 기존 토양과 혼합하는 방식으로 정식 살포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표면상으로는 일반적인 퇴비 살포와 동일한 형태를 띠고 있어, 현장 단속이나 주민 신고가 있더라도 ‘정상 농작업’으로 둔갑해 법망을 피해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무안군의 한 주민은 “트럭이 와서 냄새나는 물질을 하역하길래 민원을 넣었더니, 이미 트랙터가 혼합 작업을 끝내 현장 증거가 없다며 조치가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다.
결국 이는 폐기물을 땅에 뿌리고도 이익을 남기는 왜곡된 순환 시스템이며, 농민들도 이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환경오염의 방조자가 되고 있는 셈이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무안 갯벌… 생태계 붕괴 직면
무안은 2021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갯벌(Korean Tidal Flats)' 4대 핵심 구역 중 하나로, 갯벌 생물 다양성으로서의 국제적 가치를 인정받은 지역이다.
그러나 현재 무분별한 슬러지 퇴비 살포와 폭우로 인한 유출로 인해 세계자연유산이자 생물다양성의 보고인 무안 갯벌이 심각한 위협에 직면해 있다.
퇴비 속 유기물, 악취성 침출수, 미처 걸러지지 않은 병원성 세균 등이 갯벌로 유입되면 갯벌의 자정능력이 붕괴되고, 김·낙지·짱뚱어·백합 등 해양 생물의 서식 환경이 파괴될 수 있다.
환경 전문가는 “무안 갯벌은 단순한 진흙 해안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자연유산이며, 이곳이 오니 슬러지의 종착점이 되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규정 사각지대… 농업과 폐기물 관리, 이원화된 책임
현재 이 문제는 퇴비 기준과 폐기물 관리 기준이 혼재된 제도적 허점 속에서 벌어지고 있다.
‘퇴비’로 등록되면 축산과나 농정 부서의 관리 대상이 되고, ‘폐기물’로 분류되면 환경과의 허가 및 처리가 필요하지만, 슬러지를 퇴비로 둔갑시키면 사실상 감시의 눈길을 벗어나는 ‘회색지대’가 된다.
한 관계자는 “단속하려 해도 법적으로 ‘퇴비 등록’을 마친 경우 폐기물로 보기 어려워 제재가 어렵다”며, “현행 제도의 실효성 문제로 인해 현장에서는 손을 놓는 경우도 있다”고 털어놨다.
공존의 농업을 위한 경계선, 다시 세워야 할 때
밭둑 하나 없애고, 슬러지 한 줌 뿌린 결과가 수로를 막고 바다를 병들게 했다.
지자체와 선출직 공직자들은 지금이야말로 밭과 바다 사이, 사람과 자연 사이의 최소한의 경계를 회복해야 할 때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또한 부숙도 판정 결과 완전히 부숙돼 냄새가 나지 않는 액비를 적정량만 시비함으로써 악취 등 환경오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위반행위로 인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무안군민과 농어민, 행정당국 모두가 ‘퇴비와 폐기물 사이’를 넘어서는 정책적 결단과 관리 시스템 혁신 없이는, 세계자연유산조차 무너질 수 있다는 엄중한 경고를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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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조헌 기자 news1919@naver.com